[치즈와 구더기 - 카를로 진즈부르그] 미사시의 재발견

[치즈와 구더기 - 카를로 진즈부르그] 미사시의 재발견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존의 역사책과는 사뭇 다른 역사책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입니다.

     

    우리가 현재 학교에서 하고 있는 역사 공부는 빽빽이 들어차 있는 연표와 중요한 사건, 인물들을 외우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사건과 인물이라 함은 당시의 주류가 되었던 문화가 기준이 되었거나 현재 우리 사회에 비추어보았을 때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역사들이 선정되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큰 업적을 남긴 왕의 업적, 인류에 큰 영향을 준 종교적, 군사적, 경제적 사건들일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내용들은 이렇게 당시의 시간 속에서 지배적이고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만 보여주는 표면적인 것들입니다.

    일반적 역사책은 왕과 지배적인 문화를 다룬 내용이 대부분

    하지만 예를 들어 아랫마을 갑돌이가 윗마을 갑순이한테 장가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요? 갑돌이의 인생에 있어서는 삶의 어떤 순간보다도 중요하고 설레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는 당사자에게만 중요하다고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결혼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결혼은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그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범한 사람의 삶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단순히 암기하는 것보다 훨씬 공감이 가고 흥미로운 역사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잘 와닿지 않는 지루한 암기 교과 과목이 아닌 오래 전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대화하듯이 읽을 수 있는 문학 작품처럼 역사책이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래 전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것을 이 책 "치즈와 구더기"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메노키오라는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만약 16세기 유럽에 대해 일반적인 역사책으로 공부한다면,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로마 교황청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점점 쇠퇴하고 있는 내용들을 가장 많이 접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주류 지배층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평소와 같으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메노키오라는 한 인물에 대해서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대한 성의 성주도 아니고, 교황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기억에 남겨야 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도 아닙니다.

     

    지금 시대로 빗대어 바라보면, 이 책의 주인공은 동네 음식점 사장님 정도일 것입니다. 누가 이토록 지극히 평범한 방앗간 주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자 카를로 진즈부르그가 아니면 그는 아마도 영원히 다시 회자되지 않을 사람으로 지나갔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 미시사를 다룬 역사 책 "치즈와 구더기"

    책의 주인공 메노키오가 가지고 있었던 다른 사람과 다른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말하자면 당시의 지배적인 종교적인 관념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는 종교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단으로 심판 받게 되는 시대였고 메노키오 역시 결국 심판대에 오르고 사형에 처합니다.

     

    역사적으로 당시 한 순간만을 떼어놓고 바라보면 메노키오의 인생은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저 "한 사람이 살았고 죽었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소할 수 있는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당시 방앗간 주인이 한 사회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종교적이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이토록 깊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게다가 그 내용을 읽는 것은 그저 역사적 사료를 읽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재밌었습니다!

     

    만일 이 책이 증언하고 있는 메노키오의 이야기가 이 정도에서 멈췄다면 좋은 책을 읽었다는 것에서 감상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책의 이야기가 이걸로 다 끝이 났다고 생각하던 순간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메노키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에 대한 얘기가 짤막하게 다시 등장합니다. 아주 짧은 부분이었지만 이 대목을 읽을 때에 느껴진 전율은 책의 모든 부분을 읽을 때 느꼈던 것을 모두 덮을만큼 강렬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읽는 것이 결코 그 한 사람의 삶만 읽는 것은 아니구나!'

     

    "치즈와 구더기" 덕분에 미시사에 대하여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두에 예로 들었던 갑돌이가 갑순이에게 장가가는 내용과 같은 미시사를 다루는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출간된다면, 지루한 역사 공부가 아닌 마치 그들의 바로 옆에 서서 보고 듣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한 줄 리뷰!]

    "누군가 기억해 주고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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