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 - 마크 롤랜즈] 철학은 이성으로 사람을 울린다

[철학자와 늑대 - 마크 롤랜즈] 철학은 이성으로 사람을 울린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진심을 다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인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철학에서 뜻하지 않은 감동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철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때에는 저자의 생각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반론을 세울 수 있을까 하는 태도로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저자가 어떤 철학적인 내용을 풀어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생각에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리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즉 브레닌(저자와 11년간 동거한 늑대의 이름)의 최후를 함께 할 때 그런 저의 모든 생각들은 잡동사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자가 브레닌의 무덤을 만들고 돌무덤 앞에서 그의 유령을 만난 그 때, 저는 노트북을 열고 감상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느낀 뭉클함,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점점 뜨거워지는 감정, 그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들이 한 순간에 뒤집어지는 변화까지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늑대에게 삶은 원과 같이 생긴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슴이 먹먹해진 채로 책을 겨우 덮은 저는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여운을 느꼈고, 개인적으로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철학”의 범주에 있는 것에 대해 격하게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분명히 철학적인 내용을 전달해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브레닌이 전해주는 철학은 머릿속에서 냉철하게 분석하고 날카롭게 사고하는 그러한 철학의 기존 틀을 벗어나게 해줍니다. 이 책에서 만나는 철학은 오히려 차가워진 머릿속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가슴을 뜨겁게 끓이는 철학입니다.

    혹자는 인간의 지성과 감정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지성이 먼저 깨우치고 그것에 동의하여 지성에 따라 감정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때는 저자가 풀어내고 있는 철학적 의견들이 늑대를 키우는 것에 푹 빠진 한 괴짜 철학자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극히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며칠 동안 브레닌과 동행한 결과 저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지성과 감정의 관계에서 지성이 아직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지성이 그것을 선택해버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브레닌을 단지 며칠 동안만 바라본 제가 이렇게 거대한 변화를 경험했는데, 11년 동안 함께 먹고, 산책하고, 씻고, 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루를 시작했던 저자는 매일 얼마나 강렬하게 그것을 경험했고, 뜨거운 가슴으로 살았을지 상상해보니 저자가 한 없이 부러웠습니다.

    이 “철학”책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깊이 숙고한 인간에 대한 탐구는 “인간은 삶의 시간을 일직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직선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욕망과 목표와 과제의 화살들은 인간을 이 선에 옭아매는데, 그 안에서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직선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그 의미를 박탈하는 죽음을 향하고 있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이 직선에 매혹되기도 하고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덧붙입니다.

    Joseph Conrad가 쓴 "Heart of Darkness"의 화자인 Marlow는 아프리카를 가리켜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The fascination of the abomination"
    Heart of Darkness, Joseph Conrad

    말 그대로 혐오스러움의 매혹입니다. Marlow가 아프리카에 대해서 얘기한 바로 그것을 인간은 시간에 대해서 동일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인간은 바로 이 시간의 화살에 혐오감을 느끼면서 일탈을 꿈꾸다가도 다시금 매료되어서 계속 일직선상에 머무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직선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이 반복 속에서 조금만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행복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브레닌의 죽음을 통해서 늑대의 삶은 일직선이 아닌 원과 같은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그 근거로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덧붙입니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삶은 직선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지나갔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직선상에서 언젠가 다다를 마지막 종착지를 바라보고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순간을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삶은 직선이 아닌 원이기 때문에 영원히 반복됩니다. 영원히 반복될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함께할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각 순간은 언젠가 다가올 막연한 행복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아마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저와 같은 수 많은 사람들 역시 언젠가 도달하게 될 미지의 행복한 순간을 꿈꾸며 시간의 일직선상 위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저마다의 욕망과 목표와 과제의 화살 속에서 혐오감과 매력을 동시에 경험하며

    그 자체로 완전한 순간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채로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저는 늑대와 동행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더 행복한 삶을 그릴 수 있는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여전히 욕망과 목표와 과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시간의 일직선상에서 찾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나의 신분에 맞는 본분에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언젠가 도달할 목표에 딸린 그냥 반복되는 일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순간마다 그 순간에 고유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삶의 자세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암 투병을 하면서도 산책을 하며 순간을 즐기는 한 마리 늙은 늑대에게서 제가 배운 가장 소중한 보석입니다. 비록 제가 책을 통해 브레닌과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브레닌이 짧은 시간 동안 제게 전해준 감동과 삶의 태도는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만약 일직선상의 시간의 화살 속에서 달리기 하는 삶을 살아가며 제대로 일탈해보지도 못하고, 혐오하면서도 어느새 다시 그것에 매료되어 여전히 직선상에 갇혀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저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오늘의 한 줄 리뷰]

    "인간은 여전히 자연으로부터 배울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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