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는 없다 - 샘 해리스] 내가 한 선택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자유 의지는 없다 - 샘 해리스] 내가 한 선택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자유 의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샘 해리스의 "자유 의지는 없다"에 대해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저의 의식의 흐름을 적으면서 감상평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왜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독후감을 작성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 책을 선택해서 읽었으며, 그보다도 먼저 왜 책을 읽으려는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것이 철저히 내 자유로운 의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매순간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고유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죄가 들어오게 되었으며, 인간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궁극적인 죄책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생각해보아도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접근조차 힘들었다.

    만약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한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의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좀처럼 시도하기 힘든 생각을 이 책에서는 과감하게 펴내고 있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보편적인 근거는 ‘우리 모두가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었다’는 것과 ‘지금 우리가 하는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라는 두 가지의 큰 축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험

    하지만 저자는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느 한 생리학자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이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인식하기 300밀리세컨드 전에 뇌피질에서 이미 그것을 결정한 뉴런활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더욱 최근에 이루어진 실험에서는 700밀리세컨드 전이라고 밝혀지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시점보다 앞서서 무의식중에 무언가가 그 결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요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뇌로 하여금 먼저 그런 생각을 하도록 했을까요? 책에서 답을 명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저자는 그것을 불가사의라고 얘기합니다. 일각에서는 그 무의식도 자기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결국 무의식의 선택이 나의 선택이며,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주장에 맞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무엇이 무의식에 자극을 주는가, 불현듯 스치는 생각은 어디서 발생하는가? 알 수 없다. 그것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자유의지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그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내가 스스로 욕구를 주입한 것일까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발현 된 근원을 알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달리 행동할 수도 있었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정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도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 근거가 스스로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런 염려를 드러낼 것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의 요지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행동의 근원이 그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근거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생각에 대해 범죄자의 의도에 집중하면서 반박을 이어 나갑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내면에서 ‘해를 끼치려는 의식적인 의도’를 가장 크게 비난하는데, 그 의식이 바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문득 발생하는 욕구의 근원은 그 사람에게 있지 않지만, 그 욕구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주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에 근거해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공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 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그 성공이 사람의 공이 아닌 자연으로부터 받은 일종의 특혜이고 운이라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노력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운이 따른 것뿐이고, 그 생각을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질을 특별히 부여 받은 단지 수혜자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수록 한편에서는 계속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묘하게 설득 당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시다.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것이 자연이치에 들어맞는다고 해도 자유의지가 없는 삶은 참 우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나의 생각의 주체가 될 수 없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욕구와 생각에 조종되는 삶이 너무나 부정적으로만 들렸던 것입니다.

     

    책의 저자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꼭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고, 저자 스스로도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데,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득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해 읽었던 것이 떠올라서 어쩌면 그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체는 한 사람의 인생이 정확하게 똑같이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 7월의 어느 날, 내가 카페에 앉아서 책에 대한 감상평을 쓰고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똑같은 글을 작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생에서도 나는 이와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만약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인생이 회의적이고 불행하게 느껴진다면, 니체의 의도대로 된 것입니다. 니체는 삶에 대해서 회의적인 관점을 유지했고, 이러한 반복되는 삶의 진실에 대하여 경지에 이른 인간은 삶이 본래 그런 것임을 체념하고 그런 삶조차도 노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길 위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동안 바라보며 자연을 노래한다면, 다음 생에서도 나는 그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다음 생에도, 또 그 다음 생에도 나는 동일하게 자연을 노래할 것입니다.그렇기에 니체의 인생관은 역설적이게도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적인 인생에 맞서 오히려 지금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순간은 영원히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인생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말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현 듯 찾아온 생각에 의식적으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나는 자연으로부터 어떤 기질을 부여받은 존재인가.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의미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한 줄 리뷰!]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란 말이야! 라는 변명은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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